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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대입을 6개월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 나라에서 대학이 이렇게 중요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언제부터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시 되고 대학을 못들어간 학생들은 낙오자로 불리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어른들은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공부나 해라"

"그런 생각은 대학 들어가서 해도 늦지 않다."

"일단 시험은 잘 보고 그런 말 해라."

 능수능란한 대답 회피다.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보니까 대학 나온 사람들이 성공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관찰만 하였고 그것을 토대로 답을 하는 것 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참고로 이 글은 내가 대입(수시)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다가 쓰게된 글이다.>



 

우리나라는 흔히 SKY 그다음에 서성한 중경외시 이렇게 인서울 대학 서열이 정해져있다. 원래 좋은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서 우수한 교수들이 가르치고 결국에는 이 학생들이 훌륭한 사회인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 것이 사실이라면 굳이 좋은 대학을 안가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도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따로 지장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벽은 참 높다. 우리나라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터 선입견이 들어온다. "아 이놈 공부 안한 놈이군?" 그 사람이 정작 어느 정도의 실력이나 지식이 있는지는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저 대학진학을 안했다는 점에서 기회는 박탈당할 수 있다. 

 

 대학이라는 것은 이제는 학생양성의 기능보다 하나의 명품 브랜드 인것이다. 우리는 명품을 사면서 "아무리 못해도 ㅇㅇ뷔퉁 인데 뭐."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못해도 무슨대학교 나왔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회사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절대로 허물은 아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만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3년동안 성적을 잘 받은 학생들만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다. 성실함과 성적이 꼭 비례한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제도를 비판할려면 그 제도를 이겨낸 사람이여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비판부터 하는 것은 하소연일 뿐이다. 교육제도도 전교 1등이 비판해야지, 하위권이 비판해봤자 비겁한 변명이 되는게 현실이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도망은 치지 않을 것이다. 싸우고 이긴후에 당당하게 비판 할것이다. 



6개월 동안 최선을 다한 싸움을 걸어본다.